(영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 그 중에 영화를 나중에 보시려고 하시는 분들을 이 글을 읽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올 상반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두 영화. 박찬욱 감독의 박쥐.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 하도 박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보았으나... 실망을 많이 하여 마더를 보기를 주저했었다. 그 후 최근에 본 마더. 오히려 마더를 먼저 보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재미는 별개로 하고, 그 관객에게 던져주는 주제가 명확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이답지 않게 어수룩 하고 모자란 도준(원빈). 도준은 이것 저것 사고를 치며 (하지만 그 사고가 전부 도준이 친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골프장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엄마(김혜자)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않은채 친구인 진태(진구)와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때 마을에서 일어난 소녀의 살인사건.  도준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이 여고생의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도준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다. 경찰은 범인을 결정하고 종결하기 위해 수사를 서둘고, 변호사는 돈만 밝히며 감옥에서 4년만 있게하자며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아무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아들친구 진태의 말을 듣고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다.

사실 이 세상 그 어느 어머니도 위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서 다뤘을 것이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자녀가 위기에 몰렸을 때 어느 부모가 그 자녀를 돕기위해 나서지 않을 것인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서 그 조사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주관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죽은 소녀의 주변아이들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며 그 소녀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생활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몸을 팔았으며 그 사람들의 사진을 핸드폰에 몰래 찍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찾은 그 핸드폰.

도준은 소녀가 죽은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해 내려다 자신에게 5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을 해낸다. 이에 엄마는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지만, 도준은 납득을 하지 못하고... 이 장면으로 인해 관객들은 엄마가 도준에게 쏟는 관심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게된다. 예쁘게 태어났으나, 생활고로 인하여 목숨을 끊으려다 살아남은 후 '모자라게 된' 도준에 대한 죄책감으로 모든 행동이 도준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며칠 후 그 현장에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을 해 낸 도준. 그 이야기에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그 사람이 누군가를 결국 찾아내었다. 엄마는 그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도준이 누명을 쓴게 아니라 실재 사람을 죽인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이유도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이야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도준에게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짓밟고 한대 맞으면 두대 때리라는 식으로 교육을 했던 것이다.) 이후 아들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엄마는 그 사람을 죽이고 불까지 질러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고 만다.

마침 또 다른 지체아의 옷에서 죽은 소녀의 혈흔이 발견되어 살해용의자로 체포되고 도준은 석방된다.

이 영화에서의 엄마는 어찌보면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 그 모습을 김혜자는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마지막 엔딩신은 그러한 의미일까? 도준의 엄마가 이 세상 다른 엄마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그 안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관광버스 신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단지 사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가끔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고 온 자녀의 부모가 학교를 찾아서 선생을 무릎꿇리고 사과를 받아내는 모습. 이러한 것이 결국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타인에게 폭력으로 작용한 모습일 것이다

과유불급. 지나치면 아니한만 못하다. 자식에 대한 맹목적이고 지나친 (자신의 과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한) 사랑. 그것은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작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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