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알게 된건 88년 5공청문회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정치가 무엇인지, 비리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를 때였습니다. 오직 저에게 있던 유일한 정치는 그 전년도에 있었던 얼마전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박수를 받고 다들 설설 기던 사람을 향해 (저희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서서 니가 대통령 욕을 하면 아버지가 짤린다. 어느집 누구는 소리소문도 없이 없어졌다더라 등등의 이야기를 가끔 해주셨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이것저것 따지는 모습. 그것이 그대의 처음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궁금해하던 저에게 "대통령이, 아니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위해,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것을 조사하고 있는 거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조사도 없이 대충 나와서 청문회를 하는데 저 사람은 정말 열심히 조사를 해와서 제대로 따지는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그대를 또한번 접하게 된것은 3당 합당 때 였습니다. 5공 청문회이후 정치에 관심이 생겼던 저에게도 3당 합당은 충격이었습니다. 집권여당인 민정당과 매번 다투고 싸우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공화당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하나네~ 하면서 당을 합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충격 속에서 그대를 보았습니다. 3당합당이 아닌 정치적 부도덕한 야합이라며 강력히 반대하는 모습. 그리고 탈당하여 꼬마민주당을 세워나가는 그 모습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1992년 국회의원선거 (부산), 1995년 광역시장선거(부산), 1996년 국회의원 선거(서울 종로) 에서 연이어 떨어지는 모습에 운이 없는걸까, 이제 청문회 스타 라는 걸로는 먹히지 않는 걸까.. 하며 안타까워 하였습니다 그 후 그대는 꼬마민주당 동지들과 1997년 대선전 헤어지게 됩니다. 3김정치 타파와 군사독재정권 심판및 정권교체에 대하여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게 된 것이죠. 그 후 그대는 김대중을 지지하며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을 하고 대선에서 결국 김대중이 15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그대는 처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서울종로구에서 출마하여 드디어 국회로 들어가는 모습에 노무현의 정치에 드디어 꽃이 피는구나, 그동안의 고생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그 벽을 넘겠다며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구를 떠나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서 결국 낙선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저사람이 희망이다. 세상과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부조리함에 항거하고 세상의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오직 한사람. 노무현. 그만이 희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은 동교동계 물갈이하여 당을 회복시키려는 정풍운동 속에서 국민경선제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고 아, 드디어 노무현이 때를 만나겠구나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원리원칙자여서 정치적 비주류이긴 하지만, 그의 뜻을 아는 국민들이 많이 있을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때 그대를 지지하기 위하여, 그대에게 저의 희망을 걸기 위하여 국민경선에 참여신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민경선의 첫 시작인 제주에서 그대는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정치적 지지세에 비하여 좋은 출발이라 할 수는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습니다. 두번째인 울산에서는 1위를 차지하였지만, 3번째인 광주가 문제였습니다. 그대는 경상도 출신이고, 당시는 이인제 대세론이 우세하던 시기이며, 리틀 김대중이라고 불리는 한화갑 후보가 제주에서 1위를 차지하며 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광주에서 의외의 1위를 차지하며 노무현 바람을 전국적으로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그대가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이 되는 모습을 보며 감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세상이 바뀌는구나. 그러나 그대의 개혁성향과 비주류 성향을 탐탁치 않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노무현 흔들기에 들어섰고, 월드컵 4강 바람을 일으키며 대선후보에 출마한 정몽준 후보로 바꾸자는 노골적인 흔들기를 하였죠.

후단협을 결성하며 탈당을 하였고,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철새세력도 있었으며, 정몽준의 신당과 연대를 위해 당을 떠나는 세력들. 이들 세력을 보며 세상은 승리만이 전부가 아닌 그대의 도전정신,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낙선 가능성이 더 큰 곳에 출마하던 그대의 모습이 더 간절했습니다. 이런 푸대접을 받는 후보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에 합의를 하였고, 결국 노무현으로 판가름이 났었죠. 정말 기뻤습니다. 아무리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여러번 했어도, FIFA 부회장으로 월드컵 4강을 이끌어 냈어도 그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국민대화합을 이끌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은 그대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가 선거운동을 한것도 아니고,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이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행복해하였습니다. 정말 든든했습니다.

그대가 임기중 탄핵을 당했을 때도 그대 곁에 있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스터디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자료를 복사하러 간 복사실의 켜 있던 텔리비젼 뉴스를 보고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하였습니다. 스터디를 마치고 무작정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혼자서 국회앞에서 시위라도 해야겠다.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시위라도 해야겠다 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수천, 수만명의 국민이었습니다. 그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민주당이 그대를 떠난다고 할지라도, 비록 한나라당에서 그대에게 돌을 던진다고 하더라도, 그대 곁에 있어줄, 그대 대신 그 돌을 맞아줄 국민들이 그대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대는 혼자입니다.
작은 관 속에 그대는 혼자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대를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준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을 시키고 도와드리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그대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대통합은 그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위주의 타파는 그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북화합은 그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비겁했습니다.
노무현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무현이니까.
그저 그대만을 믿고 도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수많은 짐을 우리가 떠 안겨 드린 다음 모두 자기일에만 바빴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 영원히 함께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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