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사진



오늘 12월 30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인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날입니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지금의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 지산진 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에 옥사하셨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죽음은 옥중에서 정체를 알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등의
생체실험을 당하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사실 윤동주 시인의 시집은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출간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이후 19편의 시를 골라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고 하였으나
그때는 출간을 하지 못하였구요,
1948년에 윤동주 시인의 유작 31편을 모아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습니다.

왼쪽이 초판본 (1948년) 가운데가 중판본 (1955년)



윤동주 시인은 민족적인 저항시인이면서 서정적인 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초기에는 암울한 분위기와 함께 유년적인 평화를 지향하기도 하였는데요,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에 쓰여진 후기 시들의 경우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시, 자화상, 별헤는 밥,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도시샤 대학시절. 아래줄 왼쪽 두번째.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릿코대학 재학시절





별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년)



숭실중학교 시절. 위줄 오른쪽이 윤동주, 위줄 가운데 문익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연희전문학교 시절. 왼쪽이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

도시샤대학시절 머물던 교토에 세워진 추모비. 이곳에서 윤동주 시인이 잡혀가셨다.

추모비 옆에 잇는 시비. 서시가 새겨져있다. (직접 가서 찍은 거라 자세히 보면 제가 보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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